“공정 밸리데이션은 무조건 3배치”라는 말, 현업이나 취업 준비 과정에서 한 번쯤 들어보셨을 텐데요. 이 오랜 관행의 기준점 역할을 해 온 국제 권고 문서가 20여 년 만에 새 옷을 입었습니다. PIC/S가 2026년 7월 30일 적격성평가(Qualification)·밸리데이션(Validation) 권고안 개정판 「PI 006-4」를 발간했고, 2026년 10월 1일부터 발효됩니다. PIC/S 밸리데이션 권고안은 우리 식약처를 포함한 각국 실사관이 참고하는 문서인 만큼, 실무 기준에도 영향이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본 포스팅에서는 PI 006-4가 어떤 문서인지, 무엇이 달라졌는지 핵심 3가지, 그리고 QC/QA 실무자와 취업 준비생이 준비할 사항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PI 006-4는 어떤 문서인가요?
PIC/S(의약품실사상호협력기구)는 각국 GMP 실사(Inspection) 당국이 모여 기준을 조화시키는 기구입니다. PIC/S가 발간하는 권고(Recommendation) 문서는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실사관이 현장에서 판단할 때 참고하는 사실상의 기준으로 통합니다.
이번에 발간된 PI 006-4는 기존 PI 006-3을 대체합니다. PI 006-3은 밸리데이션 종합계획서(Validation Master Plan), 설치적격성평가(IQ)·운전적격성평가(OQ), 비무균 공정 밸리데이션, 세척 밸리데이션에 대한 4개 권고를 묶은 문서였는데요. 개정판은 이를 하나의 체계로 다시 정리하면서 원료의약품(API)과 완제의약품을 아우르는 범위를 담았습니다.
개정 작업은 전담 워킹그룹이 맡았습니다. 초기에는 영국 MHRA의 Norman Gray가, 이후에는 아일랜드 HPRA의 Kevin O’Donnell과 미국 FDA의 Rebecca Dowd가 공동 의장을 맡았습니다. 주요 규제기관이 함께 만든 문서라는 점에서, 특정 국가만의 시각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핵심 변화 ① 고정 3배치에서 ‘과학적 정당화’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공정 밸리데이션 배치 수에 대한 접근입니다. 기존에는 “연속 3배치”가 업계의 사실상 표준처럼 통용되어 왔는데요. PI 006-4는 배치 수를 고정된 숫자로 정하는 대신, 제품·공정에 대한 이해도와 공정의 복잡성, 위해성 평가(Risk Assessment) 결과에 근거해 과학적으로 정당화하도록 방향을 잡았습니다.
▶ 그럼 이제 3배치로 하면 틀린 건가요?
아닙니다. 위해성 평가 결과 3배치가 적절하다면 여전히 3배치로 진행할 수 있습니다. 달라지는 것은 “왜 그 배치 수인가”를 문서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관행이니까 3배치가 아니라, 우리 공정의 변동 요인과 데이터에 근거해 그 수가 충분하다는 논리를 계획서에 담아야 합니다. 단순한 적합/부적합 판정을 넘어 공정능력을 통계적으로 보여주는 접근이 강조되는 흐름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핵심 변화 ② 위해성 평가가 범위를 결정하는 전주기 접근
PI 006-4는 적격성평가와 밸리데이션의 범위와 정도를 “정당화되고 문서화된 위해성 평가”에 근거해 결정하도록 합니다. 품질리스크관리(QRM) 원칙이 부속 개념이 아니라, 어떤 활동을 얼마나 깊게 할지 정하는 출발점이 된 것입니다.
또 하나의 축은 전주기(Lifecycle) 접근입니다. 밸리데이션이 최초 성능적격성평가(PQ)를 통과하면 끝나는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변경관리(Change Control)와 지속적인 공정 검토로 이어지는 활동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실무적으로는 밸리데이션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근거, 즉 축적된 데이터와 검토 기록이 실사에서 더 중요해진다는 의미입니다.
핵심 변화 ③ 세척 밸리데이션 — HBEL 기반 한도 설정
세척 밸리데이션 파트에서는 건강기반노출한도(HBEL, Health-Based Exposure Limit)를 기반으로 최대허용잔류량(MACO)을 설정하는 접근이 중심에 놓였습니다. 과거처럼 일률적인 기준(예: 10 ppm 기준)에 기대기보다, 제품별 독성 데이터에서 출발해 한도를 과학적으로 설정하라는 것입니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제품 A의 1일 노출 허용량(PDE)이 100 µg/day이고, 다음에 생산하는 제품 B의 1일 최대 투여량과 배치 크기를 알고 있다면, “제품 B 복용 환자가 하루에 섭취할 수 있는 제품 A 잔류량이 100 µg을 넘지 않도록” 역산해 설비 표면의 허용 잔류 한도를 계산합니다. 이렇게 설정한 한도가 분석법의 검출 능력으로 확인 가능한지까지 함께 따져야 하므로, QC 분석 업무와도 직결되는 변화입니다.
실무자와 취업 준비생은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이번 개정은 2026년 7월 공지된 EU-PIC/S GMP Annex 15(적격성평가·밸리데이션) 개정 컨셉페이퍼와 맞물린 밸리데이션 규범 정비 흐름 속에 있습니다. Annex 15 개정에서는 적용 범위를 원료의약품 제조사까지 확대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어, 앞으로 몇 년간 이 영역의 기준 변화가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실무자라면 10월 1일 발효 전에 갭 분석을 제안 드립니다. 자사의 밸리데이션 종합계획서와 관련 SOP가 배치 수 정당화, 위해성 평가 연계, HBEL 기반 세척 한도라는 세 가지 축을 담고 있는지 PI 006-4 본문과 대조해 보시기 바랍니다. 부족한 부분은 변경관리 절차를 통해 개정 계획을 세워 두면 실사 대응 논리도 자연스럽게 준비됩니다.
취업 준비생이라면 면접 답변의 깊이를 더할 좋은 소재입니다. “공정 밸리데이션은 몇 배치로 하나요?”라는 질문에 “3배치입니다”로 끝내는 답변과, “관행적으로 3배치가 널리 쓰였지만, 최근 PIC/S 권고안 개정처럼 위해성 평가에 근거해 배치 수를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습니다”라고 답하는 것은 인상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적격성평가 단계별 개념이 아직 낯설다면 적격성 평가 DQ·IQ·OQ·PQ 4단계 정리를, 밸리데이션의 종류가 헷갈린다면 공정·세척·분석법 밸리데이션 비교를 먼저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정리하겠습니다. PI 006-4는 밸리데이션을 “정해진 숫자를 채우는 일”에서 “과학과 위해성 평가로 정당화하는 일”로 옮겨 놓은 개정입니다. 발효일인 2026년 10월 1일 전에 원문을 한 번 읽어두시면, 실무에서도 면접에서도 든든한 근거가 되어줄 것입니다. 원문은 PIC/S 공식 발표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